쌈지에서 선배 큐레이터 언니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
칠년간의 습작같은 나의 작업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작품을 팔러 간 작가가 아니라 선배를 사귀러 나갔던 것 같다.
선배는 아무래도 큐레이터니까 좀더 예술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좋은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나의 잊혀져가는 창작하고픈 마음이 복귀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은 무엇인가? 는 자기 표현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접근법. 한편, 예술꾼들에게 이 질문은 다르다. 그들에게 예술은 현실안에 경계지어진 전문 영역이고, 추세와 담론이 무성성히 피어나고 사라진다. 나도 전문가로써 같은 예술꾼과 함께 담론에 참여해야 하나보다. 사실 그리 즐기진 않지만.
애니메이션 영상을 댄서, 뮤지션들과 함께 퍼포먼스로 풀어내면서 나는 어떤 화두를 가지고 있었던가? 내가 내 작품과 나에대해서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각 실험이 가진 방향성과 의미는?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공유한 생각과, 내가 의도했던 것, 그리고 우리가 임의로 설정했던 소리, 시간, 동작은 어떤 기호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었는가? 내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과 같은 좋은 질문을 해주셨다.
나는 솔직하게 내 개인적인 동기를 이야기 했다 : ) 선배앞이니까 내 자신이고 싶었던 것? 언니가 재차 대답좀 제대로 하라고 해서, 예술적 선언, 용어, 시기 적절한 포장을 다시 떠올려보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삼년 내내 펀드받고 프로젝트 발표하면서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말이다. 다 사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안에서 내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들을 추려내어 봐야겠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갈아타는 역에서 한참을 헤메고,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고 잠에 골아떨어졌다. 푸훗. 내 작품보다가 언니가 막 졸던게 생각난다. 수면제가 들어있었나? 과거 망각용 수면제.언니, 만나서 반가워요.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일상과, 사람과, 일에 더 많이 기쁘고 감사한다.
Wednesday, December 17, 2008
Thursday, January 31, 2008
자나 브리스키 감독
Jana Briski, 너무 멋있다.이쁘다.훌륭하다.
본 인 브로델 (창녀촌에서 태어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여인이다.
나는 국경을 초월한 휴머니즘, 인권운동, 봉사활동, 사회 복지와 같은 범주들에 마음이 곧잘 뭉클해지곤 한다.
내 삶은 참 개인적인데도.
감독은 자기 영화를 러브스토리라고 한다
그런거 같다. 카메라와 사랑에 빠진 아이들.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 사진가.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어머니들,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 모두가 서로의 한계 때문에 서럽지만 아주 사랑하는 사이이다.
영화는 감동이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가진 순수한 힘을 보았다.
사진찍는 것을 가르쳐주고, 서로를 찍어대고, 같이 좋은 사진을 골라보기.
아이들이 찍은 사진에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잘것 없는 자신의 전부를 낯선 친구와 공유하는 건 참 멋진 경험이다.
이방인으로 들어간 사진사에게나 창녀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나 그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그렇다.유행하는 파마머리를 하고, 소문난 맛집에서 밥을 먹고, 능력있고 돈많은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것 보다 더 신나고 가슴 찡한 일이겠지.
카메라를 들고 서있을 때 나는 경계를 의식한다. 이상한(ㅋㅋㅋ)나와 낯설은 세계와의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자유로움과 긴장감. 언제나 매력적이다.
정말 존경스러운건, 자나감독님은 그 줄 완전 끊었다는 것. 작업중이라는 의식 없음.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앞장서는 것. 남의 생활이 자신의 생활이 되어버리는 것. 그녀는 척박한 환경에 갇힌 아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게끔 관공서를 뛰어다니는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창녀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통념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바깥 세상으로 내보낼수 있었다. 해냈다는 것!
통틀어 왔다 갔다 6년을 캘커타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영화를 마치고(2004) 무수한 상을 받았다. 지금은 키즈 위드 카메라라는 교육재단을 인도에 설립했다고 한다! 오예~
가끔 소심해진 나에게 묻는 말이 있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길을 걸어도 될까?
되지않을까? 뜻이 곧다면.
카메라는 나와 낯설은 세계를 연결해주는 멋진 도구야!
본 인 브로델 (창녀촌에서 태어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여인이다.
나는 국경을 초월한 휴머니즘, 인권운동, 봉사활동, 사회 복지와 같은 범주들에 마음이 곧잘 뭉클해지곤 한다.
내 삶은 참 개인적인데도.
감독은 자기 영화를 러브스토리라고 한다
그런거 같다. 카메라와 사랑에 빠진 아이들.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 사진가.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어머니들,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 모두가 서로의 한계 때문에 서럽지만 아주 사랑하는 사이이다.
영화는 감동이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가진 순수한 힘을 보았다.
사진찍는 것을 가르쳐주고, 서로를 찍어대고, 같이 좋은 사진을 골라보기.
아이들이 찍은 사진에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잘것 없는 자신의 전부를 낯선 친구와 공유하는 건 참 멋진 경험이다.
이방인으로 들어간 사진사에게나 창녀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나 그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그렇다.유행하는 파마머리를 하고, 소문난 맛집에서 밥을 먹고, 능력있고 돈많은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것 보다 더 신나고 가슴 찡한 일이겠지.
카메라를 들고 서있을 때 나는 경계를 의식한다. 이상한(ㅋㅋㅋ)나와 낯설은 세계와의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자유로움과 긴장감. 언제나 매력적이다.
정말 존경스러운건, 자나감독님은 그 줄 완전 끊었다는 것. 작업중이라는 의식 없음.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앞장서는 것. 남의 생활이 자신의 생활이 되어버리는 것. 그녀는 척박한 환경에 갇힌 아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게끔 관공서를 뛰어다니는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창녀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통념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바깥 세상으로 내보낼수 있었다. 해냈다는 것!
통틀어 왔다 갔다 6년을 캘커타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영화를 마치고(2004) 무수한 상을 받았다. 지금은 키즈 위드 카메라라는 교육재단을 인도에 설립했다고 한다! 오예~
가끔 소심해진 나에게 묻는 말이 있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길을 걸어도 될까?
되지않을까? 뜻이 곧다면.
카메라는 나와 낯설은 세계를 연결해주는 멋진 도구야!
Sunday, January 27, 2008
비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다니!
화장실에 물이 내겨가지 않는다.
하수구가 꽉찼나봐?
으에엑..
나의 별난 유학생활.
이것이 엄마와 내가 오늘 나눈 대화이다.
엄마: 난 외계인이 되었다.
나: 엄마는 지구인이야. 엄마 딸이 외계인이지.
엄마: 우리딸은 백남준 같은 미술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조용해져. 나도 먼지 더 설명하기도 어렵다.한마디 이상 못하겠다. 사람들이 자식이야기 하기 끝이 없다. 서로 다들 잘 알고 지내는 것 같고. 난 그냥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오면 속상해...아부지도 조용히 앉아있다 오고.
나: 엄마, 엄마딸은 무지 바쁘다고 해. 엄마딸이 국제적으로 너무 잘나가서 한국에는 잘 알려질 시간이 없었다고.
엄마: 엄마 아들도 제대로 외계인이다.
나: 여자친구한테 장가보내요.
엄마: 위아래 없이 어떻게 먼저 보내냐?
나: 난 할일이 쪼끔 더 있는데.
엄마: 우린 이제 잊혀진 계절이야. 옛날엔 사람들이 항상 말걸고 어떻게 하면 애들 잘키우냐고 물어봤었는데.옛날이야 다.
나: 엄마 엄마 있잖아, 내가 미국에서 진짜 잘나갈꺼니까... 지금 지원하고 있는데에서 다 오라고 하면 어떻하지?
이 인생의 무상함을 어떻할꼬?
엄마의 외로움을 나는 많이 많이 이해한다.나역시 다른 행성의 외계인이기 때문에.
슬프다.
나는 한국에서 주는 따신 밥먹고 왜 순순히 자라지 못했을까?
내 행복찾기가 길어짐에 따라서, 지구인들의 원성이 자자해지고 있다. 그것은 오바다! 중단하라~!!
금의환향. 그것만이 살길.ㅇㅇ.
화장실에 물이 내겨가지 않는다.
하수구가 꽉찼나봐?
으에엑..
나의 별난 유학생활.
이것이 엄마와 내가 오늘 나눈 대화이다.
엄마: 난 외계인이 되었다.
나: 엄마는 지구인이야. 엄마 딸이 외계인이지.
엄마: 우리딸은 백남준 같은 미술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조용해져. 나도 먼지 더 설명하기도 어렵다.한마디 이상 못하겠다. 사람들이 자식이야기 하기 끝이 없다. 서로 다들 잘 알고 지내는 것 같고. 난 그냥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오면 속상해...아부지도 조용히 앉아있다 오고.
나: 엄마, 엄마딸은 무지 바쁘다고 해. 엄마딸이 국제적으로 너무 잘나가서 한국에는 잘 알려질 시간이 없었다고.
엄마: 엄마 아들도 제대로 외계인이다.
나: 여자친구한테 장가보내요.
엄마: 위아래 없이 어떻게 먼저 보내냐?
나: 난 할일이 쪼끔 더 있는데.
엄마: 우린 이제 잊혀진 계절이야. 옛날엔 사람들이 항상 말걸고 어떻게 하면 애들 잘키우냐고 물어봤었는데.옛날이야 다.
나: 엄마 엄마 있잖아, 내가 미국에서 진짜 잘나갈꺼니까... 지금 지원하고 있는데에서 다 오라고 하면 어떻하지?
이 인생의 무상함을 어떻할꼬?
엄마의 외로움을 나는 많이 많이 이해한다.나역시 다른 행성의 외계인이기 때문에.
슬프다.
나는 한국에서 주는 따신 밥먹고 왜 순순히 자라지 못했을까?
내 행복찾기가 길어짐에 따라서, 지구인들의 원성이 자자해지고 있다. 그것은 오바다! 중단하라~!!
금의환향. 그것만이 살길.ㅇㅇ.
Thursday, January 17, 2008
Tuesday, October 30, 2007
Saturday, October 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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